
무굴 제국과 영국령 인도가 겹쳐진 이중 수도
델리는 인도의 수도로, 흔히 올드델리와 뉴델리라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닌 도시로 설명된다. 올드델리는 무굴 제국 시절 샤자한 황제가 건설한 옛 수도 샤자하나바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구역으로,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레드포트와 인도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인 자마 마스지드가 자리해 있다. 반면 뉴델리는 영국 식민 통치 시기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가 설계한 계획도시로, 넓은 대로와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같은 정부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어 올드델리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델리는 인도 북부 갠지스 평원에 자리해 있어 계절에 따른 기온 변화가 매우 극단적이다. 여름인 4월부터 6월까지는 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기는 혹서기가 이어지고, 겨울인 12월부터 1월 사이에는 짙은 안개와 대기오염이 겹치며 며칠씩 흐린 날이 계속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델리를 여행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는 대체로 10월부터 3월 초 사이로 꼽힌다.
도시는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만큼 사원과 모스크, 구르드와라가 한 지역 안에서도 뒤섞여 있는 풍경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찬드니 초크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향신료 상점과 은세공 가게, 사원 종소리와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델리 메트로는 도시 전역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혼잡한 지상 교통과 대비되는 비교적 쾌적한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코넛 플레이스는 원형으로 조성된 상업지구로, 뉴델리 계획도시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이자 쇼핑과 식사를 즐기기 좋은 중심가로 기능한다.
델리는 인도 아대륙 각지에서 몰려든 이주민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도시이기도 해서, 지역마다 언어와 음식, 생활 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는 델리를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수도라는 지위 덕분에 델리에는 각국 대사관과 국제기구가 밀집한 차나캬푸리 지역이 형성되어 있고, 이는 뉴델리 계획도시의 질서정연함을 한층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동시에 델리는 인도 각지에서 상경한 인구가 끊임없이 유입되는 도시라, 도시 외곽으로는 급속히 팽창하는 신도시와 오래된 마을이 뒤섞인 혼재된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구르가온과 노이다 같은 위성도시는 정보기술 기업과 다국적 회사들이 몰려든 신흥 업무지구로 성장하며, 델리 수도권 전체의 경제 규모를 한층 키우는 축이 되고 있다.
레드포트에서 후마윤 묘까지, 델리의 시간을 걷다
델리 여행의 상징과도 같은 레드포트는 무굴 제국의 권세를 보여주는 붉은 사암 성채로, 매년 인도 독립기념일에 총리가 이곳에서 연설을 하는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장식된 접견실과 정원이 펼쳐져, 한때 이곳이 제국의 중심지였음을 실감하게 한다. 성 앞의 찬드니 초크 시장은 좁은 골목마다 향신료, 직물, 전통 과자 상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감각을 자극하는 활기찬 풍경을 이룬다.
뉴델리로 넘어오면 후마윤 묘가 대표적인 명소로 꼽힌다.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이 어우러진 이 무덤은 훗날 타지마할 건축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원식 무덤 양식의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인근의 쿠트브 미나르는 높이 70미터가 넘는 첨탑으로, 인도-이슬람 건축 양식의 시초를 보여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탑 주변에는 1600년이 넘도록 녹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철제 기둥이 서 있어, 고대 인도 야금술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흥미로운 유물로 꼽힌다. 로터스 사원은 연꽃 모양의 독특한 외관을 지닌 바하이교 예배당으로,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인디아 게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들을 기리는 전쟁기념비로, 저녁이면 분수와 조명이 켜진 광장에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몰려드는 델리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락슈미 나라얀 사원과 시크교 구르드와라 반글라 사히브는 각기 다른 종교 건축 양식을 비교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코스가 된다. 반글라 사히브 사원 내부의 커다란 연못과 황금빛 돔은 저녁 조명이 켜지면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곳에서 봉사자들이 무료로 나눠주는 짜파티와 콩죽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랑가르 문화도 체험해볼 만하다. 델리 동물원과 붙어 있는 푸라나 낄라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중 하나로,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게 역사 유적을 둘러보고 싶은 여행객에게 추천할 만한 장소다.
근교의 아그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 타지마할을 함께 둘러보는 일정도 델리 여행자들 사이에서 널리 선택되는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다른 근교 명소인 핑크시티 자이푸르까지 묶어 사흘 일정으로 골든 트라이앵글을 완주하는 여행자도 적지 않다. 델리 메트로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주요 유적지에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어, 대중교통만으로도 하루 코스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살라 짜이와 흥정으로 배우는 델리식 처세술
델리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버터와 토마토 소스로 조리한 버터치킨과 렌틸콩을 오래 끓인 달 마카니로, 두 요리 모두 델리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대표적인 북인도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길거리 간식으로는 바삭한 튀김에 요거트와 새콤한 소스를 곁들인 짜트 종류가 인기가 많고, 어디서나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향신료를 넣은 밀크티, 마살라 짜이는 델리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자리한 음료다.
찬드니 초크나 사로지니 나가르 같은 재래시장에서는 정찰가가 아닌 흥정이 일반적이므로, 처음 제시된 가격에서 절반 가까이 깎아보는 것이 관례처럼 통용된다. 웃는 얼굴로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며 흥정하는 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대형 쇼핑몰이나 브랜드 매장에서는 정가제가 적용되니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릭샤나 오토릭샤를 이용할 때도 미리 요금을 흥정하거나 미터기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불필요한 시비를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우버나 올라 같은 차량 호출 애플리케이션이 널리 보급되어, 요금을 미리 확인하고 이동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사원이나 구르드와라를 방문할 때는 신발을 벗고 머리를 가리는 것이 예의이며, 시크교 사원에서는 무료로 제공되는 공동 식사인 랑가르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 된다.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고 물건을 건네는 관습은 인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예절이다.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 어린 질문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편이라, 여행 중에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기오염이 심한 겨울철에는 마스크를 챙기는 것이 좋고, 여름철 폭염 시기에는 오전과 늦은 오후로 일정을 나누어 야외 활동을 최소화하는 편이 체력 관리에 유리하다. 물은 반드시 밀봉된 생수를 구매해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 델리는 인도 여행의 관문 도시인 만큼 다른 지역보다 호객 행위나 바가지 관행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며, 지정된 관광안내소나 정부 인증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으로 권장된다. 힌디어를 몇 마디라도 익혀 인사말 정도를 건네면 상인이나 릭샤 기사들이 한결 반갑게 대해주는 경우가 많아, 짧은 현지어 표현을 미리 배워두는 것도 여행에 소소한 도움이 된다. 델리는 넓은 도시인 만큼 하루에 너무 많은 일정을 몰아넣기보다 지역을 나누어 이동 동선을 짜는 편이 체력과 시간을 아끼는 요령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