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팜파스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와 표정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라플라타 강 하구에 자리한 아르헨티나의 수도로, 남미 대륙에 있으면서도 파리나 마드리드를 연상시키는 유럽풍 건축이 도심 전역에 펼쳐져 있어 오래전부터 남미의 파리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20세기 초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형성된 도시 구조 덕분에 프랑스식 맨사드 지붕과 이탈리아식 발코니를 가진 건물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넓은 대로와 광장이 배치되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7월9일대로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폭이 넓은 도로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심에 세워진 오벨리스코는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상징물 역할을 한다. 이 대로를 기준으로 도시는 여러 개의 개성 있는 구역으로 나뉘는데, 팔레르모는 공원과 트렌디한 카페가 몰린 젊은 동네이고, 레콜레타는 고급 주택가와 화려한 묘지로 유명하며, 산텔모는 좁은 자갈길과 골동품 상점이 늘어선 옛 정취를 간직한 지역이다.
강 건너 남쪽의 항구 지구 라보카는 이민자 노동자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동네로, 원색으로 칠해진 양철 건물들이 늘어선 카미니토 거리가 이 지역의 상징으로 꼽힌다. 과거 부두 노동자들이 남은 페인트를 얻어다 집을 칠하며 시작된 이 색채 문화는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표하는 시각적 이미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기후는 온대성으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남반구에 위치한 특성상 12월에서 2월 사이가 여름에 해당하고 6월에서 8월 사이가 겨울에 해당한다는 점이 북반구 여행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여유로운 카페 문화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저녁 식사 시간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생활 방식이 아르헨티나식으로 녹아든 결과라 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르테뇨라 부르며, 항구 도시 출신이라는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정치와 축구, 문학에 대한 열정적인 토론 문화가 카페와 거리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은 이 도시 특유의 지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도시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코리엔테스 대로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극장가로 유명해 브로드웨이에 빗대어 불리기도 하며, 늦은 밤까지 서점과 극장, 피자집이 손님을 맞이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인근의 산마르틴 광장과 5월 광장 일대에는 대통령궁인 카사로사다를 비롯한 관공서 건물들이 모여 있어 아르헨티나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진 현장을 직접 걸어볼 수 있다.
탱고의 발상지에서 만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명소
레콜레타 묘지는 단순한 공동묘지를 넘어 대리석과 청동으로 조각된 예술 작품들이 미로처럼 늘어선 야외 박물관으로 평가받으며, 아르헨티나의 국민적 인물인 에바 페론의 묘소가 이곳에 있어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좁은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19세기 이후 아르헨티나 상류층의 부와 역사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이 묘지가 특별한 관광명소로 꼽히는 이유다.
산텔모 지구에서는 매주 일요일 도레고 광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골동품 시장이 열리며, 거리 곳곳에서 즉흥적으로 탱고를 추는 무용수들의 공연을 볼 수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탱고의 발상지임을 실감하게 된다. 저녁이 되면 전통 탱고 공연장인 밀롱가에서 현지인과 여행자가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초보자를 위한 강습을 겸하는 곳도 많아 직접 체험해보려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
콜론 극장은 세계적인 음향 시설을 갖춘 오페라 하우스로 알려져 있으며, 화려한 내부 장식과 함께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무대 뒤편까지 둘러볼 수 있다. 인근의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은 옛 극장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무대였던 자리가 카페로 바뀌고 발코니 좌석마다 책장이 들어차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자주 소개된다.
카미니토 거리에서는 원색의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과 거리 탱고 공연이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라보카 지구는 일부 구역의 치안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평가가 있어 관광객이 몰리는 중심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조언이 많다.
팔레르모 지구의 넓은 녹지인 보스케스 데 팔레르모에서는 장미 정원과 호수를 따라 산책할 수 있으며, 인근 소호와 할리우드로 불리는 두 하위 지구에는 각각 편집숍과 미디어 관련 사무실이 밀집해 있어 젊은 감각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느끼기에 좋은 장소로 꼽힌다.
일본식 정원이 조성된 팔레르모 인근의 부지와 강변을 따라 조성된 코스타네라 수르 생태보호구역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남미 특유의 습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전거를 대여해 둘러보는 여행객들이 꾸준히 찾는다. 축구에 관심이 있다면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인 라 봄보네라 경기장 투어도 놓치기 아까운 일정으로 꼽히며, 경기가 있는 날의 함성과 응원가는 관광 명소 방문과는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후기가 많으며, 경기가 없는 날에도 박물관을 겸한 구장 투어를 통해 클럽의 오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아사도와 마테차로 읽는 포르테뇨의 하루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식 문화의 정점에는 아사도라 불리는 전통 바비큐가 있으며, 숯불에 오랜 시간 천천히 구워내는 소고기 요리는 가족 모임이나 주말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핵심 요리로 여겨진다. 팜파스 초원에서 자란 소로 만든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는 세계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어,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다양한 부위를 맛보는 것이 여행 일정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로 꼽힌다.
일상적인 음료로는 마테차가 빠질 수 없는데, 말린 예르바 마테 잎을 우려낸 이 차는 둥근 용기에 담아 금속 빨대로 여럿이 돌려 마시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비되며, 공원이나 광장에서 친구들과 마테차를 나누는 모습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적인 풍경 중 하나다. 카페 토르토니와 같은 오래된 전통 카페에서는 진한 커피와 함께 추로스를 즐기며 여유를 만끽하는 현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내 이동에는 지하철인 수베가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노선으로 일부 구간은 옛 나무 소재 객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다만 노선이 도시 전역을 촘촘히 커버하지는 못해 관광객은 버스나 택시를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교통카드인 수베 카드를 미리 충전해두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식사 시간은 다른 남미 도시보다도 늦은 편으로, 저녁 식사가 밤 9시 이후에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고 주말 저녁에는 자정이 넘어서야 식당이 붐비기 시작한다는 점이 초행 여행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와인 산지로 유명한 멘도사 지역의 말벡 와인은 이 도시 어느 식당에서든 손쉽게 즐길 수 있어 스테이크와 곁들이는 조합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포르테뇨들은 격식 있는 인사 문화를 중시해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볼을 맞대는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고, 축구 이야기를 나누면 금세 친밀해질 수 있을 만큼 축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점도 이 도시를 여행할 때 알아두면 좋은 문화적 특징이다.
환전과 관련해서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복잡한 환율 구조 탓에 공식 환율과 실제 통용되는 환율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어, 여행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카드보다 현금을 적절히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조언이 자주 언급된다. 소매치기 등 경범죄에 대비해 번화가에서도 가방을 몸 앞쪽으로 메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으며, 대부분의 상점과 식당에서는 팁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있어 소액의 봉사료를 남기는 것이 관례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