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수도, 브뤼셀의 두 얼굴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가 위치한 사실상 유럽의 행정 수도로 기능하는 도시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각국 외교관과 국제기구 직원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도시 자체가 다국적이고 다언어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어를 쓰는 왈롱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브뤼셀은 지리적으로 플랑드르 안에 위치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는 이중언어 도시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거리 표지판이나 지하철 안내 방송도 두 언어로 병기되는 경우가 많다. 브뤼셀은 유럽연합 관련 기관이 밀집한 현대적이고 관료적인 이미지와 함께, 중세 길드 건물이 늘어선 그랑플라스로 대표되는 고풍스러운 구시가지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도시는 또한 초콜릿과 와플, 맥주로 대표되는 미식의 도시이자 만화와 아르누보 건축이 발달한 문화 예술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벨기에는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며 세워진 비교적 젊은 나라로, 브뤼셀은 독립 이후 줄곧 수도 역할을 해왔다. 벨기에는 언어 갈등이 정치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어 플랑드르, 왈롱, 브뤼셀 수도권이라는 세 개의 지역 정부와 언어 공동체별 정부가 함께 존재하는 복잡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브뤼셀 시내에는 유럽연합 이사회와 유럽집행위원회가 자리한 유럽 지구가 있어 이 일대에는 각국 로비 단체와 국제 언론사 사무실도 밀집해 있다. 브뤼셀은 또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태어나고 활동한 도시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서 중산모를 쓴 남자와 파이프 그림 등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브뤼셀은 19개의 자치구가 모여 이루어진 브뤼셀 수도권으로 1989년에 독립된 지역으로 공식 출범했으며, 전체 인구는 광역권을 포함해 약 120만 명에 이른다. 도시 남동쪽의 익셀과 생질 지구는 빅토르 오르타를 비롯한 아르누보 건축가들이 설계한 개인 저택들이 밀집해 있어 건축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로 꼽힌다. 마통게 지구는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구역으로, 아프리카 음식점과 미용실, 시장이 활기를 띠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흔히 먹는 방울양배추, 즉 브뤼셀 스프라우트라는 이름도 바로 이 도시에서 유래했다. 브뤼셀은 나토 본부가 위치한 도시이기도 해 유럽연합 기구와 더불어 국제 안보 외교의 거점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랑플라스에서 아토미움까지, 브뤼셀의 풍경
그랑플라스는 브뤼셀 구시가지의 중심 광장으로, 금박으로 장식된 길드하우스들과 고딕 양식의 시청사가 사각형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극찬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광장 근처 골목에는 브뤼셀의 상징이자 동시에 다소 엉뚱한 볼거리인 오줌싸개 동상 마네켄 피스가 있는데, 실제 크기가 매우 작아 처음 본 여행자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으며 다양한 의상을 입혀 전시하는 전통도 이어지고 있다. 왕립 미술관에는 브뤼헐과 마그리트 등 벨기에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어 벨기에 미술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아토미움은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구조물로, 철 결정 구조를 거대하게 확대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부 전망대에 오르면 브뤼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브뤼셀은 만화의 도시로도 불릴 만큼 스머프와 땡땡 같은 캐릭터가 탄생한 곳으로, 도심 곳곳 건물 외벽에 그려진 대형 만화 벽화를 따라가는 코미크 스트립 루트를 걸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유럽연합 지구에는 유럽의회 건물이 있어 일정 조건 하에 내부 견학도 가능하다. 생 미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웅장한 쌍탑이 인상적인 브뤼셀의 주교좌성당으로, 벨기에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거행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생튀베르 갤러리는 1847년 유럽 최초로 지어진 유리 지붕 아케이드 쇼핑몰로, 우아한 아치형 천장 아래 고급 초콜릿 상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벨기에 만화 센터에서는 아르누보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가 설계한 옛 직물 매장 건물 안에서 스머프와 땡땡을 비롯한 벨기에 만화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브뤼셀 중심가에서 트램이나 지하철로 조금만 이동하면 오르타 자신의 자택을 개조한 오르타 박물관이 있어 아르누보 양식의 실내 장식과 가구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사블롱 지구는 앤티크 상점과 고급 초콜릿 부티크가 모인 우아한 동네로, 주말 아침이면 광장에 골동품 시장이 열려 그림과 은식기를 구경할 수 있다. 생캉트네르 공원에는 벨기에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세운 대형 개선문이 있으며, 그 아래 왕립 예술역사박물관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사법궁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법원 건물 중 하나로, 압도적인 규모의 돔과 계단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델리리움 카페는 한때 기네스북에 세계 최다 맥주 판매 술집으로 등재될 만큼 방대한 맥주 목록을 갖추고 있어 애호가들의 순례지로 통한다.
와플과 초콜릿으로 완성하는 브뤼셀의 맛
브뤼셀 와플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사각형 격자무늬가 특징으로, 생크림과 과일, 초콜릿 소스를 곁들여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노점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브뤼셀은 또한 프랄린으로 대표되는 고급 초콜릿의 본고장으로, 갓 만든 초콜릿을 조금씩 구입할 수 있는 쇼콜라티에가 그랑플라스 인근에 밀집해 있다. 홍합을 화이트와인이나 크림소스에 쪄내고 감자튀김을 곁들이는 물 프리트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국민 요리로, 커다란 냄비째 나오는 홍합찜을 여럿이 나눠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자튀김은 벨기에가 원조라는 자부심이 강해 프리트라 불리는 이 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것이 현지식이다. 벨기에는 수도원 맥주를 비롯해 종류가 다양한 맥주로도 유명한데, 체리를 넣은 크릭이나 상면발효 방식의 다양한 에일을 전문 맥주 바에서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브뤼셀은 도보와 지하철, 트램을 조합하면 대부분의 명소를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는 규모이며,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잦은 편이므로 방수 재킷이나 우산을 챙기는 것이 좋다.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만큼 평일 낮에는 정장 차림의 인파가 많고, 주말에는 관광객 중심으로 도시 분위기가 한결 여유로워진다. 브뤼셀 남쪽 근교의 워털루에는 나폴레옹이 최후의 패배를 맞은 전쟁터가 남아 있어, 사자 언덕에 올라 옛 전장을 조망하는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매년 8월 중순에는 그랑플라스 광장 바닥을 베고니아 꽃으로 뒤덮는 플라워 카펫 행사가 격년으로 열린다. 브뤼셀 남역과 북역, 중앙역은 유로스타와 탈리스 등 국제 고속열차가 오가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에도 편리하다. 벨기에 맥주를 주문할 때는 맥주마다 전용 잔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 바텐더가 맥주 종류에 맞는 잔에 따라 내오는 모습도 눈여겨볼 만한 문화다. 초콜릿 브랜드 뇌하우스는 1912년 브뤼셀에서 세계 최초로 프랄린을 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고디바와 레오니다스가 뒤를 이어 벨기에 초콜릿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다.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얇고 바삭한 사각형인 브뤼셀식과 달리 리에주식은 두툼하고 진주설탕이 콕콕 박혀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벨기에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직접 양조하는 정통 맥주로도 유명한데, 시메이와 오르발 맥주는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의 인증을 받은 소수의 진품에 속한다. 소고기를 맥주에 넣고 끓인 카르보나드 플라망드는 감자튀김과 함께 즐기는 벨기에식 가정식이다. 매주 일요일 남역 인근에서 열리는 미디 마켓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노천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