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가 태어난 아르노 강변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주도로, 아르노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다.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르네상스 예술과 학문이 꽃핀 곳으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심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 높이와 색채가 대체로 통일되어 있어 언덕이나 첨탑에서 내려다보면 붉은 기와지붕이 끝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중심에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거대한 돔으로 유명한 두오모, 정식 명칭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피렌체는 걸어서 하루 이틀이면 주요 구역을 대부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도보 여행에 적합한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자전거나 전동 스쿠터로 이동하는 현지인도 많다. 시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아르노 강 위에는 여러 다리가 있는데 그중 폰테 베키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다리로 상징성이 크다. 피렌체는 또한 이탈리아 표준어의 뿌리가 된 토스카나 방언이 발달한 곳으로, 단테와 페트라르카 같은 문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학 도시로서 젊은 인구도 많아 구시가지 곳곳에 활기찬 카페와 와인바가 섞여 있다. 피렌체의 번영은 원래 양모와 직물 산업, 그리고 금융업에서 비롯되었는데,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뒤 이를 예술과 건축 후원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피렌체에서 만들어진 금화 피오리노는 한때 유럽 전역에서 통용될 만큼 신뢰받는 화폐였다. 도시 이름은 꽃의 여신 플로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시의 상징 역시 붉은 백합 문장으로 남아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 자리한 베키오 궁전은 과거 시청사이자 메디치 가문의 거처였고, 지금도 시청 기능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두오모를 중심으로 반경 1~2킬로미터 안에 대부분의 명소가 몰려 있어 대중교통 없이도 충분히 도보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피렌체만의 매력이다. 기차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피사의 사탑이 있는 피사, 중세 성벽 마을 시에나, 와인 산지 키안티 지역이 자리해 당일치기 근교 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1966년에는 아르노 강이 범람해 도시 전역이 진흙과 물에 잠기는 대홍수가 발생했는데, 당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물에 잠긴 문서와 예술품을 복구하는 데 힘써 진흙 천사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두오모 대성당은 1296년 공사가 시작되어 완공까지 140년 넘게 걸렸으며,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돔은 1436년에야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두오모에서 미켈란젤로 언덕까지
두오모 대성당은 외벽이 흰색, 초록색, 분홍색 대리석으로 기하학적 패턴을 이루고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돔 내부로 오르는 좁은 나선 계단은 다소 힘들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피렌체 시내 전경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피치 미술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등 르네상스 회화의 정수를 소장하고 있어 사전 예약 없이는 입장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도 흔하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 원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여행객이 많다. 폰테 베키오 다리 위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온 금세공 및 보석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 다리라기보다 상점가에 가깝다. 아르노 강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광장은 피렌체 전경과 두오모의 돔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특히 해 질 무렵에는 붉게 물드는 하늘과 도시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피티 궁전과 그 뒤편의 보볼리 정원은 메디치 가문의 여름 별장이었던 곳으로 상대적으로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다.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갈릴레오와 미켈란젤로의 묘가 있어 이탈리아 위인들의 판테온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오모의 거대한 돔은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 판테온을 연구해 고안한 이중 껍질 구조 덕분에 별도의 지지대 없이 완성될 수 있었으며, 이는 르네상스 건축 공학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두오모 옆에 자리한 팔각형 세례당의 청동문에는 기베르티가 조각한 구약성서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이를 보고 천국의 문이라 극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산 로렌초 성당은 메디치 가문의 전담 교구 성당으로, 지하에는 역대 메디치 가문 인물들의 묘가 안치된 메디치 예배당이 있다. 시뇨리아 광장 한쪽의 로지아 데이 란치는 지붕 덮인 야외 조각 전시장으로,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상을 비롯한 여러 조각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오르산미켈레는 원래 곡물 창고였다가 성당으로 개조된 독특한 건물로, 외벽 니치마다 길드를 상징하는 수호성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베키오 다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폰테 산타 트리니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었으나, 전후 강바닥에서 원래 돌을 건져 올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바르젤로 미술관은 한때 감옥으로 쓰였던 건물로, 도나텔로가 조각한 청동 다비드상을 비롯한 르네상스 조각의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어 조각에 관심 있는 여행자에게는 우피치 못지않게 중요한 장소다.
비스테카 한 접시로 만나는 토스카나 식탁
피렌체를 대표하는 음식은 단연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즉 두꺼운 티본 스테이크로, 키아나 지역 소고기를 뼈째 두껍게 썰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붉게 남도록 구워낸다. 보통 500그램 이상의 큰 덩어리로 나오기 때문에 여럿이 나눠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밖에 빵과 야채를 걸쭉하게 끓인 리볼리타, 토스카나식 소금기 없는 빵으로 만드는 파파 알 포모도로도 현지 가정식으로 자주 접할 수 있다. 와인은 인근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가 유명하며, 시내 곳곳의 에노테카에서 잔술로 가볍게 맛볼 수 있다.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다면 트리파이오라 불리는 노점에서 파는 소 내장 샌드위치 라포르타 디 트리파를 시도해볼 만하다. 쇼핑을 원한다면 산 로렌초 시장 주변 가죽 제품 노점이나, 폰테 베키오의 금세공품이 대표적이다. 피렌체는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대부분의 명소를 도보로 다닐 수 있지만 여름철에는 골목 사이 그늘이 적어 체감 온도가 높으므로 이른 아침 관람을 추천한다. 성당이나 미술관 입장 시에는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복장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디저트로는 젤라토가 유명한데, 피렌체는 젤라토의 원조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산타 트리니타 다리 인근이나 두오모 주변에 오래된 젤라테리아가 여럿 남아 있다. 아침 식사로는 크루아상과 비슷한 코르네토와 에스프레소를 서서 마시는 바 문화가 일상적이며, 카푸치노는 오전에만 마시고 식후에는 잘 주문하지 않는 것이 현지 관습이다. 산 로렌초 시장 안쪽의 중앙시장 메르카토 첸트랄레는 1층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2층에서는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푸드코트를 운영해 가볍게 현지 음식을 맛보기 좋다. 피렌체 근교 키안티 지역의 와이너리 투어는 반나절 코스로도 다녀올 수 있어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올리브 오일 시음을 함께 진행하는 곳도 많다. 대중교통은 대부분 도보로 해결되지만 근교로 이동할 때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편리하다. 피렌체 전통 시장 음식으로는 소의 네 번째 위장 부위인 람프레도토를 삶아 빵 사이에 끼운 파니노 알 람프레도토가 대표적인 서민 간식으로, 산탐브로조 시장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토스카나 요리는 대체로 소박한 재료로 깊은 맛을 내는 서민 요리 전통이 강해 화려한 소스보다는 좋은 올리브 오일과 신선한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방식이 특징이다. 와인바인 피아스케테리아에서는 잔술로 다양한 토스카나 와인을 저렴하게 시음할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부담 없는 선택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