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년의 시간을 품은 호수의 도시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홍강 삼각주에 자리해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오래된 도시다. 도심 한가운데에는 호안끼엠 호수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거나 태극권을 수련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호수 안 작은 섬에는 거북이 전설이 얽힌 응옥선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하노이는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의 건축물과 사회주의 시기의 유산,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왕조 시대의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는 도시로, 걷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결을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인 올드 쿼터는 흔히 '36거리'라 불리는데, 실제로 각 거리는 과거 특정 물품을 팔던 상인 조합에서 이름을 따와 실크 거리, 은 세공 거리처럼 품목별로 나뉘어 있었던 전통이 지금도 부분적으로 이어진다. 좁은 골목마다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오가고, 길가에 낮은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파는 노점들이 활기를 더한다.
기후는 다른 동남아시아 도시와 달리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한 편으로, 겨울인 12월부터 2월 사이에는 쌀쌀하고 흐린 날이 이어져 외투가 필요할 정도로 서늘하다. 여름에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며 소나기가 잦다. 이런 기후 덕분에 하노이는 다른 열대 도시와는 다른 정취를 지닌 도시로 평가받는다.
하노이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답게 관공서 건물과 넓은 대로가 인상적이며, 호치민 주석의 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동시에 서호(떠이호)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선 세련된 구역이 형성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스타트업과 외국계 기업이 늘면서 도시 외곽으로도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구시가지의 정취만큼은 오랫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하노이는 리, 쩐, 레 왕조를 거치며 오랫동안 베트남의 수도로 기능해온 만큼 도시 곳곳에 왕조 시대의 성곽과 사당이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탕롱 황성 유적도 이러한 역사적 층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도심 곳곳에 조성된 가로수길과 프랑스풍 관공서 건물은 하노이만의 차분하고 고풍스러운 도시 경관을 완성한다. 겨울이면 노란 은행잎이 아닌 붉은 꽃을 피우는 목화나무가 거리 곳곳을 물들이고, 봄이 되면 벚꽃과 비슷한 연분홍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도심 가로수길을 장식해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하노이 시민들은 계절마다 바뀌는 이 거리의 표정을 소재로 삼아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기며, 이는 다른 열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하노이만의 정취로 꼽힌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기찻길 골목까지, 하노이 산책기
하노이 여행의 중심은 단연 호안끼엠 호수로, 이른 아침이면 조깅과 배드민턴을 즐기는 주민들 사이로 산책을 나선 여행객이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호수 북쪽의 응옥선 사당으로 이어지는 붉은색 목조다리, 테훅교는 하노이를 대표하는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진 문묘가 있어 유교 문화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올드 쿼터 골목을 걷다 보면 기찻길 위로 집들이 바짝 붙어 있는 이른바 '트레인 스트리트'를 만나게 되는데, 정해진 시간에 기차가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 장면이 독특한 볼거리로 알려져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다만 안전 문제로 통제가 강화되는 경우가 있으니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호치민 주석의 유해가 안치된 호치민 영묘와 그 옆의 목조 가옥, 하노이 기둥형 사찰로 유명한 못꼿 사원은 함께 둘러보기 좋은 구역을 이룬다. 서호 주변으로는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쩐꾸옥 사원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어 노을 무렵 방문하면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근교로는 세계자연유산인 하롱베이가 대표적인 당일 또는 1박 투어 코스로 꼽히며, 기암괴석이 솟은 바다 위를 크루즈로 유람하는 일정이 하노이 여행과 함께 자주 묶여 판매된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는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를 본떠 지은 노란색 건물로, 주변 프렌치 쿼터의 넓은 대로와 어우러져 유럽의 소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롱비엔 다리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세워진 철제 다리로, 노을 무렵 다리 위를 걸으며 홍강과 강변 채소밭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산책 코스로 꼽힌다. 하노이 국립박물관과 베트남 여성박물관은 각각 고대 문명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로 전시를 구성해, 비 오는 날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은 대안이 되어준다. 탕롱 수상인형극장에서는 물 위에서 인형을 조종해 농촌 생활과 전설을 묘사하는 베트남 전통 공연인 수상인형극을 관람할 수 있는데, 징과 북 반주에 맞춰 펼쳐지는 무대가 짧은 시간 안에 베트남 민속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묘 경내의 진사제명비에는 옛 과거 급제자들의 이름이 거북 조각 등에 새겨져 있어,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현지 학생들의 발길이 시험 시즌마다 이어진다. 하노이 기차역 인근의 옛 프랑스풍 주택가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관광객이 덜 붐비는 하노이의 소박한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다.
에그커피 한 잔과 함께 배우는 하노이식 여유
하노이를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에그커피, 현지어로 카페 쯩이다. 진한 베트남 커피 위에 달걀노른자와 연유를 휘핑해 올린 이 음료는 하노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좁은 골목의 오래된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이 여행의 큰 즐거움으로 꼽힌다. 길거리 음식으로는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새콤달콤한 국물에 찍어 먹는 분짜와 담백한 쌀국수 포가 대표적이며, 하노이식 포는 남부 호치민식보다 국물이 맑고 향신료가 덜 강한 편이다.
거리에서는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식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며, 위생에 예민하다면 사람이 많고 회전이 빠른 노점을 고르는 것이 요령이다. 오토바이가 인도까지 점령하는 경우가 많아 보행 시에는 항상 주변을 살피는 습관이 필요하고, 도로를 건널 때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가면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피해가는 것이 이곳만의 도로 문화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른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원이나 사당을 방문할 때는 소란스럽지 않게 행동하고 노출이 적은 옷차림을 갖추는 것이 예의로 통한다. 흥정은 재래시장에서는 흔하지만 정찰제 상점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는 안개와 흐린 날씨가 잦아 사진을 찍기에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그만큼 뜨거운 쌀국수 한 그릇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노이는 겨울철 기온이 10도 안팎까지 떨어지는 날도 있어 열대 지방을 예상하고 얇은 옷만 챙긴 여행객이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방문 시기의 기온을 미리 확인하고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밤 시장이 열리는 주말이면 올드 쿼터 일부 도로가 보행자 전용으로 바뀌어 노점과 공연으로 북적이는데, 이 시간대에 방문하면 하노이 시민들의 활기찬 밤 문화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 노점에서 값을 흥정할 때는 웃는 얼굴로 여유 있게 접근하는 편이 좋은 결과를 얻는 요령이며, 사원이나 사당에서 향을 피울 때는 현지인의 동작을 눈여겨보고 따라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하노이 사람들은 대체로 신중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편이라 첫 만남에서는 격식을 갖춘 태도가 좋은 인상을 남기며, 명함이나 선물을 건넬 때는 두 손으로 정중하게 전달하는 것이 예의로 받아들여진다. 겨울철 여행이라면 얇은 겉옷 여러 겹을 겹쳐 입는 방식이 아침저녁의 일교차에 대응하기 좋고, 우기가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대비해 작은 우산을 챙겨 다니는 습관을 들이면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