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사이공의 활력이 살아있는 남부의 관문
호치민시는 베트남 남부 최대의 도시로, 통일 이전에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도 시내 중심가는 여전히 사이공이라는 옛 이름으로 통용된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지어진 노트르담 대성당과 중앙우체국이 도심 한복판에 남아 있어 유럽풍 건축과 아시아의 활기가 뒤섞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노이가 정치와 역사의 도시라면 호치민시는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로, 베트남 경제 성장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는 1군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를 띠며, 1군에는 관공서와 고급 호텔, 쇼핑가가 밀집해 있고 3군과 빈탄군에는 조용한 주거지와 카페 골목이 자리한다. 부이비엔 거리는 밤이 되면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술집 거리로 변모해 늦은 밤까지 활기를 띤다. 반면 5군의 쩌런 지역은 화교 공동체가 오랫동안 터를 잡아온 곳으로 중국식 사원과 시장이 독특한 분위기를 이룬다.
기후는 연중 고온다습한 열대성으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나뉜다. 5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우기에는 오후마다 짧고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아 우산이나 우비를 챙기는 것이 일상적인 습관이 된다. 계절과 관계없이 한낮의 더위는 상당히 강해 실내와 야외를 오가며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요령이다.
무엇보다 호치민시를 상징하는 것은 오토바이의 물결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교차로를 가득 메운 채 물 흐르듯 움직이는 광경은 이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며 새로운 이동 수단이 더해졌지만, 오토바이 중심의 도시 풍경은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이다.
도시 외곽으로는 7군의 푸미흥 신도시가 한인 교민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한식당과 마트가 밀집해 있으며, 2군의 타오디엔 지역은 외국인 주재원들이 많이 거주해 브런치 카페와 갤러리가 늘어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호치민시는 구역마다 이질적인 풍경이 공존하는 모자이크 같은 도시다. 남부 특유의 느긋한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 하노이보다 격식이 덜하고 사업적인 대화도 한결 편하게 오가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는 오랫동안 무역항으로 외부 문물을 받아들여 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도이머이 개혁 이후 외국 자본이 가장 먼저 몰려든 곳 역시 이 도시였기에, 베트남 경제 개방의 실험장이자 상징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호치민시는 지금도 베트남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로 꼽힌다.
통일궁에서 벤탄시장까지, 사이공의 발자취
호치민시 여행은 흔히 통일궁에서 시작된다. 베트남전 종전 당시 탱크가 정문을 부수고 진입한 역사적 장소로, 내부에는 옛 대통령 집무실과 지하 벙커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인근의 전쟁유적박물관은 베트남전의 참상을 사진과 유물로 전시해 무거운 역사를 직시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도심의 벤탄시장은 기념품과 옷, 열대과일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해 사이공 특유의 활기를 느끼기에 좋은 장소다. 시장 인근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중앙우체국은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프랑스 식민지풍 건축물로, 우체국 내부는 지금도 실제 우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두 건물 사이 거리는 사이공의 대표적인 산책로이자 사진 명소로 꼽힌다.
근교의 구찌 터널은 베트남전 당시 게릴라전을 벌이던 지하 통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으로, 좁은 터널을 직접 기어 지나가 보는 체험이 가능해 역사 교육적 의미와 함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메콩 델타 지역으로 떠나는 당일 투어 역시 수상시장과 열대과일 농장을 둘러보는 코스로 인기가 많다.
밤이 되면 부이비엔 거리와 응우옌후에 보행자거리가 활기를 띠는데, 특히 응우옌후에 거리는 넓은 광장 형태로 조성되어 주말 저녁이면 시민들이 모여 산책과 거리 공연을 즐기는 명소가 된다.
빈탄군의 랜드마크81 전망대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스카이덱에 오르면 사이공강을 따라 뻗어나가는 도심과 근교의 논밭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투티엠 지역은 옛 습지를 새롭게 개발한 신도심으로,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구간이 많아 호치민시의 미래상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5군 쩌런의 티엔허우 사당은 바다의 여신을 모시는 화교 사원으로, 천장을 가득 채운 나선형 향이 타들어가는 모습이 이색적인 볼거리를 이루며 화교 공동체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사이공강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도 인기가 많은데, 랜드마크81과 시내 고층빌딩의 조명이 강물에 비치는 풍경이 낮과는 또 다른 도시의 얼굴을 보여준다. 인민위원회 청사는 프랑스 식민 시절 시청사로 지어진 건물로, 야간 조명이 켜지면 유럽 궁전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외관 덕분에 사이공을 대표하는 야경 명소로 꼽힌다. 청사 앞 광장에 세워진 호치민 주석의 동상 주변으로는 저녁이면 산책 나온 시민과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 뒤섞여 활기를 더한다.
반미와 코콘넛 커피로 채우는 사이공의 하루
호치민시의 아침은 바게트 사이에 고기와 채소, 향채를 넣은 반미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바게트 문화가 베트남식으로 재해석된 대표적인 사례로, 노점마다 조금씩 다른 속재료와 소스로 저마다의 개성을 낸다. 이 밖에도 잘게 부순 밥과 고기, 계란 프라이를 곁들인 껌떰, 진한 연유를 넣은 코코넛 커피는 남부 지역 특유의 달콤하고 진한 맛을 보여준다.
호치민시는 하노이보다 자유롭고 상업적인 분위기가 강해 흥정 문화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벤탄시장 같은 관광객 밀집 구역에서는 초기 제시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가벼운 흥정을 시도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대형 마트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정찰제가 적용된다.
도로를 건널 때는 하노이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걸으며 오토바이 흐름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 요령이며, 갑자기 멈추거나 뛰는 행동은 오히려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오토바이 택시나 자동차 호출은 여행자에게 편리한 이동 수단으로 널리 쓰인다.
무더운 날씨 탓에 카페 문화가 발달해 있어 에어컨이 잘 갖춰진 카페에서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것도 현지인들의 흔한 일상이며, 여행자에게도 유용한 휴식 전략이 된다.
낡은 아파트 건물을 개조해 층마다 개성 있는 카페와 편집숍을 채워 넣은 이른바 '카페 아파트먼트'는 호치민시 젊은 세대의 감각을 보여주는 명소로, 42 응우옌후에 주소의 건물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노점과 술집이 많아 야행성 여행객에게도 즐길 거리가 풍부하며, 사이공 특유의 자유롭고 상업적인 에너지는 도시를 떠날 때까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시장에서 흥정을 할 때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부르기보다 웃음 띤 태도로 조금씩 조율해가는 것이 서로 기분 상하지 않는 방법이며, 사원이나 절 방문 시에는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을 피하는 것이 예의로 통한다. 남부 특유의 느긋한 상거래 문화 속에서도 관광지 밀집 구역에서는 소매치기나 바가지에 대한 기본적인 경계심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한 여행에 도움이 된다.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열대과일은 무게를 달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궁금하다면 먼저 저울에 올려보고 흥정하는 편이 오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노점이 많은 만큼 야식 문화도 발달해 있어, 하루 일정을 마친 뒤 출출함을 달래기에 좋은 선택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